Self-Educating/글
2022: Decentralization
Rouxist
2022. 12. 31. 23:23
올해로 성인이 되었다. 초중고 공교육이 끝나고 사회로 나온다는 점에서, 또 생일 이후 만 19세가 되면 성인으로서 많은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20세는 큰 기점이 되는 나이다. 앞으로는 내가 일 년간 어떤 생각을 하였고, 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매년 기록해두려 한다.
시작하기 전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성인이 되기 전 고등학교를 다니며 하던 생각과 방향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 가치관이나 지향점이 고등학생일 때 추구하던 것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이라는 허상, 반지성주의
왜 학교에 다니고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 그에 답해줄 수 있을만큼 지혜롭지 않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을 위할 생각이 없는 권력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라도 가지만, 이들은 모여봤자 그 어디도 가지 못한다. 공교육을 통해 사고력을 거세당한 이들이 교사가 되고, 그들은 다음 세대 학생들의 생각할 권리를 빼앗는다. 이에 대한 어떠한 개선 의지도 없는 권력자들에 의해 이 시스템은 확고히 유지된다. 흡사 말하는 감자가 되는 과정을 교육이라 포장하고, 배움이 일어날 수 없는 교육을 하며 학생들에게 배움을 준 양 세뇌시키는 반지성주의. 그렇게 다같이 사이좋게 우물 안에 갇힌다. 이것이 내가 겪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공교육이었다.
요즘의 학교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인터넷에 대한 접근 등을 통해 학생들이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힘을 가지는 세태는 기존보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미 공교육 내에서 교육에 대한 정의가 완벽히 왜곡되어있는상태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이 (내가 겪은 것처럼) 교사들의 꼭두각시 인형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영원히 발전할 수 없다.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알게 됨으로써 종종 학생들의 부적절한 언행이나 행동이 교사의 교권을 위협하곤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처럼 학생들이 점점 교사에게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며 바람직한 방향이다.
한양대학교에서는 1학년을 보내며 제대로 교육을 하시는 듯한 교수님들을 만나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학기당 한 분씩이었으니 충분히 많았다.
싸가지 없는 어른, 존대의 폐해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이 타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 구사에 우위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중의 정도를 판가름하는 문화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은 제법 오래 전부터였다. 그리고 몇 달 전 편의점에서 한 노인 근로자로부터 "비켜"로 추정되는 말을 들은 후로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 나라에는 존중받지 못해 마땅할 연장자가 너무 많았고, '싸가지 없다'는 표현은 연장자에게도 쓰여 마땅하다.
불합리한 위계를 만드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대한민국의 존댓말 기반 언어 문화는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현 인류의 발전을 주도하는 학문들(과학, 공학, 특히 IT기술)에 대한 연구를 서양이 주도하는 것은 동서양의 언어문화 차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연장자가 슈퍼 갑이 되는 우리 민족의 문화, 그리고 그것을 철옹성같이 지켜온 기성세대는, 현재 대한민국이 기술 발전의 측면에서 뒤쳐지는 모든 사안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술 발전의 측면에 국한할 것 없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축구 선수나 농구 선수가 개인기 쓴다고 혼나는 나라에서 어떤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와 유사하게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상대로 근거 없는 권위를 내세우던 교사들은 지금 돌아보면 측은하다.
코인, 블록체인
코인, 나아가 블록체인은 어렵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인은 기술을 자세히 이해하기 어렵고, 그것에 기반한 자산들은 사회적으로 온갖 오명을 뒤집어 써 이미지도 부정적이고, 그에 대한 제도 마련은 늦는 문화지체의 사례가 되고 있기도 하다. 비록 나도 올해가 되어서야 블록체인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기 시작했고, 상당히 늦은 관심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흥미롭다. 마치 애덤 스미스가 우리의 저녁 식사는 여러 경제 주체들의 사적 이익 추구의 결과라고 하였듯, 비트코인은 개개인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채굴을 하면 네트워크의 위조가 더욱 어려워진다. 비트코인이 사용자들간의 신뢰를 위하여 사익이 공익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듯, 이러한 시스템이 사회에 더 널리 적용될 수는 없을까. 가령 본질적으로는 공익에 기여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구성원들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 정치인 개개인의 사익 추구가 국민들을 위한 공익 추구에 기여하게 되는, 기존의 체계를 완전히 초월하는 시스템이 등장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
Decentralization
교사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하는 학생이나, 발전을 막는 싸가지 없는 연장자들에 대한 반발을 볼 때면, 탈중앙화(decentralization)가 떠오른다. 기성 권력의 불합리함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중앙의 권력이나 소위 '어른'들의 말을 충실히 따른다고 무언가가 보장될 수 없고, 개개인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져야 하도록,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말하듯 (매일 아침) 자신이 기대를 가지는 것이 있어야 하고, first principle과 같이 개개인이 자신의 판단 기준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